출처 : 도파민네이션-애나 램키
- 저자
- 애나 렘키
- 출판
- 흐름출판
- 출판일
- 2022.03.21
실제 정신과 의사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다양한 중독 환자들의 사례와 작가의 해결책(심리학적인 근고 바탕)를 통해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꼭 술, 담배, 마약, 게임, SNS가 아니어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중독 행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한 달 간 내 중독적인 행동을 멈춰보려고 한다. 한 달 뒤에 다시 여기로 오도록 하겠다.
머리말>>>
이 책은 쾌락을 다룬다. 동시에 고통도 다룬다. 무엇보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1부. 쾌락과 고통의 이중주>>>
1장.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
모든 환자는 열지 않은 상자, 읽지 않은 소설, 탐험하지 않은 땅이다. 언젠가 한 환자는 암벽 등반이 어떤 느낌인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암벽에 매달려 있으면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하나를 다음에 어디에 둘지 결정하는 일에 한계가 있는 반면 눈앞에 펼쳐진 암벽 표면은 무한하다고, 심리치료는 암벽 등반과 다르지 않다. 나는 말하기와 다시 말하기로 빚어지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그 밖의 것들은 잊어버리려 노력한다.
이중생활double life은 중독자가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까지 속이고 약물, 알코올, 혹은 다른 강박 행동을 몰래 하는 것을 가리킨다.
넓게 봤을 때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대상에 중족되는 데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는 그 대상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대상을 구하기 쉬울수록 시도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인터넷은 중독 대상에 대한 높은 접근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강박적 고용을 부추긴다. 영상은 ‘입소문이 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밈이 등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혹자들이 온라인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때, 그 행동은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기 때문에 ‘평범하게’ 보인다.
강박적 과용의 문제를 겪기 가장 쉬운 이들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인데, 그중에서도 잘사는 나라에서 사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보상 수준이 높고, 효능이 강하며, 새로운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시에 의미 있는 일자리, 안전한 주고, 수준 있는 교육, 적절한 의료 서비스, 법 앞에서의 인종 및 계급적 평등에 소외되어 있다. 이는 중독 위험 요소의 위험한 연쇄 작용을 불러온다.
2장. 행복에 중독된 사람들>>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대에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축소형 성인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서구 문명에서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간주되었다. 부모와 보호자가 할 일은 아이들이 사회화를 통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아기의 경험이 오랫동안 잊히거나 의식적인 자각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평생 심리적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설명은 정신 분석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성인의 정신병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통찰은, 모든 도전적인 경험이 우리를 심리치료용 소파로 데려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변질됐다.
양육과 교육과정에서 발달심리학과 공감이 강조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가치를 성취도와 별개로 인정하고, 학교 운동장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신체적 정신적 야만 행위를 삼가며, 사고하고 배우며 논의할 수 있는 안전한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완충재를 가득 채운 독방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유년기를 너무 질병처럼 대하고 과하게 관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이러면 아이들은 상처받을 일이야 없겠지만 세상에 대처할 방법도 모르게 된다. 우리가 아이들을 역경으로부터 과보호한 탓에, 아이들이 역경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을 거짓으로 칭찬하고 현실을 감추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인 탓에, 아이들이 참을성이 떨어지고 권리만 더 내세우며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무지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가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준 탓에, 새로운 쾌락주의 시대를 조장하게 된 건 아닐까?
든든한 가족, 질 높은 교육, 재정적 안정성, 양호한 건강 등 인생의 모든 혜택을 누리면서도 과도한 불안감, 우울감, 신체적 고통을 스스로 키우는 듯한 이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침에 침대에서도 겨우 빠져나온다.
고통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약물 중독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있지 않다.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에서 얘기한 것처럼 “매스커뮤니케이션 산업은 대부분 옳고 그름과 무관한데 비현실과 관련이 있을 만큼 거의 완전히 무관하고… 이 거대한 산업의 발전은 기분 전환에 관한 인간의 무한에 가까운 욕구를 고려하지 못했다.”
닐 포스트먼 “미국인들은 더 이상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 대신 서로를 즐긴다.” 그들은 생각을 주고받지 않는 대신 이미지를 주고받는다.
일종의 기기에 의존한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환자에게 의사가 한 말: “수업을 받으러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듣지 말고 생각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해보세요. 그게 자신과 친해지는 방법이거든요.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펼치는 거죠. 전자 기기만 붙잡고 지내는 게 소피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을 거예요. 매번 자신을 피하는 건 정말 지치는 일이죠. 소피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경험하는 일이 새로운 생각과 기분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세상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게 할 거예요.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 끔찍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다.
3장. 뇌는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뇌의 주요 기능성 세포는 뉴런이라고 불린다. 뉴런들은 시냅스에서 전기 신호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서로 소통한다. 뇌에서 전기 신호를 조절하는 화학적 메신저인 셈이다.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은 많지만 여기서는 도파민에 초점을 맞추겠다.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특정 행동이나 약물의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결고(복측피개영역, 측좌핵, 전두엽피질을 연결하는 뇌의 회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신견과학자들은 도파민의 발견과 더불어,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쉽게 말해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의식적 사고나 별도의 의지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나는 이러한 자기 조절 시스템을 그렘린(도구나 기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환상 속 존재)들이 쾌락 쪽의 무게를 상쇄하기 위해 저울의 고통 쪽에 올라타는 모습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렘린들은 어떤 생물체가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경향, 다시 말해 향상성을 대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쾌락적 혹은 정서적 중립으로부터 오랫동안 혹은 반복해서 벗어나면 겪는 대가가 이후 반응(자극과 반대되는 가치를 갖는)이다.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과학자들은 이과정을 신경 적응 neuroadaption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쾌락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그렘린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지고 많아지며, 우리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앞서 선택한 쾌락을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한다. 내성은 중독의 발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고도의 도파민 물질에 오랫동안 과하게 기댕 경우 뇌가 도파민 부족 상태에 이른다.
중독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중독 대상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지점에 느꼈던 상실감을 고통스럽게 증언한다. 이 단계에 들어선 환자들은 쾌락의 대상을 탐닉해도 전혀 흥분을 맛보지 못한다. 오히려 비참한 기분에 빠진다. 이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증상으로는 불안감, 과민 반응, 불면증, 불쾌감 등이 있다.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쾌락-고통 저울은 앞서 상당한 절제 기간을 거친 사람들도 다시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그저 평범한 기분(수평 상태)을 느끼려 해도 중독 대상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지 쿱은 이러한 현상은 ”불쾌감에 따른 재발”이라고 표현한다. 중독 대상에 과거와 같이 다시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금단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린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중독 대상에 다시 노출되는 경우뿐 아니라 그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 또는 암시에 노출되는 경우에도 쾌락-고통 저울은 요동친다. 신경과학계에서는 이것은 단서 의존 학습이라고 부르며 고전적 (파블로프식) 조건 형성이라고도 한다.
도박 장애는 보상 기대(보상 전의 도파민 분비)와 보상 반응(보상을 받고 있거나 받은 후의 도파민 분비)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도박 중독을 앓은 내 환자들은 도박 중일 때 한편으로는 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지면 질수록 도박을 계속하고 싶은 충동은 더 강해지고 계속 지다가 이기면 쾌감이 더 강해진다고 얘기했다. 이것이 손실 추구라고 표현되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NS에서는 다른 이들의 반응이 너무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좋아요’나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얻기 불확실하다는 점이 ‘좋아요’그 자체만큼 우리를 흥분시킨다.
뇌는 도파민을 생산하는 뉴런의 형태와 크기를 바꾸면서 보상에 대한 장기 기억과 관련 단서들을 암호화한다. 예를 들어 뉴런의 가지라 할 수 있는 가지돌기는 도파민 보상이 클수록 더 길어지고 많아진다. 이 과정을 경험 의존 가소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뇌의 변화는 평생 갈 수 있고, 중독 대상에서 벗어난 후에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감작 sensitization: 일정한 반응을 야기하는 자극에 이미 노출되어 민감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우리는 순간적이고 영원한 기억을 뇌리에 새기기 때문에 쾌락과 고통의 교훈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그러한 기억이 해마hippocampus에 남아서 평생 가는 것이다.
계통발생적으로 쾌락과 고통을 처리하는 가장 오래된 신경 장치는 진화 과정을 걸치면서 대체로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결핍의 세계에 완벽히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쾌락이 없으면 먹거나, 마시거나, 번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이 없으면 상처나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은 궁극적인 추구자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세상의 시험에 너무나 잘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풍족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 풍요로운 세상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만성적인 좌식 식사 환경에서의 당뇨병을 연구한 톰 피누케 박사는 이를 두고 “인간은 열대우림의 선인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건조기후에 살아가는 선인장이 열대우림에 던져진 것처럼 우리는 과도한 도파민에 둘러싸인 환경에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끌어 낸다. 우리가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잘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우리는 21세기 인간으로서 어떠한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져야 할까?
어쩌면 그 해답을 중독자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강박적 과용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중독에 가장 취약한 사람, 즉 중독과 싸우는 이들이다. 오랫동안 여러 문화에서 타락한 자, 기생하는 자, 버림받은 자, 부도덕한 자로서 소외당해온 중독자들은 지금 시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혜를 다져 왔다.
2부. 중독과 구속의 딜레마>>>
4장. Dopamine : 나와 중독을 이해하는 7단계>>
D: Data 데이터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단순한 사실들을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O: Objectives 목적
이성적이지 않아보이는 행동에도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다.
P: Problems 문제
진정한 원인과 결과를 깨닫기 위해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A: Abstinence 절제
절제는 항상성,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덜 강한 보상에서 쾌락을 얻는 능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 또한 중독 대상을 사용하는 것과 느끼는 방식 사이의 진정한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4주면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그렘린들을 이겨내고 저울을 쾌락 쪽으로 기울일 만큼 강력한 보상이라면,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어서 하나의 중독에서 다른 중독으로 바뀌는 결과(교차 중독)를 야기할 수 있다. 반면에 평균 이하 강도의 보상은 보상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고도의 도파민 보상을 받으면 평범한 쾌락으로부터 기뻐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M: Mindfulness 마음챙김
생각, 감정, 고통을 비롯한 감각을 떠나서 자신을 살펴볼 기회이다. 우리의 뇌가 뭔가를 하는 동안 뭘 하고 있는지를 재지 않고 관찰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마음챙김은 절제으 ㅣ초기 단계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중 다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고도의 도파민 물질과 행동에 기댄다. 그러나 중독 대상에서 탈피하려고 도파민 사용을 멈추면 처음엔 고통스러운 생각, 감정, 가ㅁ각들이 몰려든다. 이때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이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마음챙김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경험은 새롭고 예기치 못한 다채로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고통은 계쏙 그 자리에 있지만 다양하게 변화하고, 결국 자기만의 고통으로 남는 게 아니라 모두의 고통을 대승적으로 아우르게 한다. 시간이 흐르고 연습을 계속하면서 정신적 경계가 점차 느슨해지고 의식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현재의 순간으로부터 나 자신을 계쏙 벗어나게 할 필요가 없음을, 그 안에 살면서 그것을 견딜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I : Insight 통찰
자신의 중독 대상을 최소 4주간 멀리하는 간단한 연습으로 자기 행동을 명확히 통찰하는 결과를 나는 임상 치료와 내 삶 속에서 줄곧 확인했다. 우리가 중독 대상에 계속 의존하는 동안에는 통찰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N : Next Steps 다음 단계
중독 대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 나는 환자들에게 절제하는 한 달을 보낸 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이떄 환자 대다수는 자신이 한 달동안 절제에 성공하고 절제의 이점을 경험할 수 있음에도 다시 중독 대상에 기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에 기대던 것과 다르게 기대고 싶어 한다.
중독의학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는 논란은, 중독 대상에 심하게 기대왔던 사람들이 그 대상에 ‘적당히, 위험 없이 기대는 일이 가능한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증거에 따르면 과거에 중독 기준에 살짝 걸쳐 있던 일부 사람들, 절제된 방법으로 자신의 중독 대상에 다시 기댈 수 있다.
E : Experiment 실험
목표가 계속 절제하는 것이든 적당히 의존하는 것이든, 우리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함께 전략을 짠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면서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를 알아낸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절제라는 목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심각한 중독을 앓는 이들에게 그렇다. 한동안 잘 참다가 어느 순간 둑이 터지듯 의존량이 도리어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절제 위반 효과라고 한다.
내 환자 중 중독 대상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 성공한 이들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고 얘기했다. 결국 그들은 최종적으로는 중독 대상과의 이별을 택했다.
5장. 자기 구속: 중독 관리를 위한 3가지 접근법>>
불문율 :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법. 관습법이나 판례법 따위.
자기 구속은 제이콥이 자신의 기계를 버리는 행위를 표현하는 용어다. 우리가 강박적 과용을 완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과 중독 대상 사이에 장벽을 만드는 방법이 바로 자기 구속이다. 여기선 개인적 동인이 일부 역할을 하지만 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 구속ㅇㄴ 의지의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는 전략이다. 효과적인 자기 구속을 실천하기 위한 열쇠는, 먼저 우리가 강력한 강박의 마법 아래서 경험하는 자발성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을 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다.
자기 구속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물리적 전략(공간), 순차적 전략(시간), 범주적 전략(의미). 그러나 자기 구속은 완벽한 안전장치가 아니다.
물리적 자기 구속,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쓰레기통마저 버려라.
순차적 자기 구속, 시간제한과 결승선.
이 연구는 중독 대상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시간적 기회를 줄이면 사용량을 줄이는 동시에 무한 접근으로 귀결되는 소비의 강박과 증가를 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특정 대상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알아보는 것은 사용 정도를 파악하고 줄일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다. 실제 사용 시간 같은 객관적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것을 부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져서 더 괜찮은 위치에서 중독을 관리할 수 있다.
지연가치 폄하는 보상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보상 가치를 낮게 보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우리가 중독성 있는 물질에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시간적 시야’가 좁아진다.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우리가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 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 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범주적 자기 구속, 넓은 그물을 쳐라.
범주적 자기 구속은 도파민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하위 유형, 그리고 허락하지 않는 하위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을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도 금지하는 방식이다.
내가 몇십 년동안 다양한 환자를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터득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상황이 나아지면 모든 게 일관성 있고 알맞아진다. 그날 제이콥은 그렇게 알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부도 윤이 났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마누엘 칸트가 <윤리 형이상학>에서 적었듯이, “우리가 이렇게 내면에 법을 만들 수 있음을 꺠달을 떄, (자연적) 인간은 자기 안에서 도덕적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느낀다.”
제이콥에게는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곧 자유로워지는 길이었다.
6장. 처방약의 두 얼굴>>
3부. 탐닉의 시대에서 균형 찾기>>>
7장. 고통 마주보기>>
8장. 있는 그대로 말하라>>
9장. 나를 살리는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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